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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부르는 이 시대 우리의 ‘나례儺禮’12월 27일부터 29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송년공연 ‘나례’가 펼쳐졌다. ‘나례’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700여 년간 궁중과 관아, 민간에서 행해 온 섣달 그믐밤의 벽사진경 의식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태평한 새해를 맞이하기 행해져 온 축제다. 궁중 예인을 비롯해 민간의 최고 광대들까지 함께 어우러진 계급 간, 계층 간 벽을 허문 왕실의 연말 문화이자 새해맞이 의식이었던 ‘나례’는 이번 무대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관객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로비는 전통 음악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모인 관객들로 꽉 들어찼다. 국립국악원에서는 관객들에게 작은 방향제를 하나씩 선물해 주었고,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로 불린 창작민요 ‘훠이 훠이 물렀가라’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와 경쾌한 분위기를 더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횃불이 일렁이는 창덕궁 영상의 막이 오르며, 나례의 시작을 천지에 고하는 1장 고천지(告天地)가 펼쳐졌다. 섣달 그믐밤 창덕궁에 어둠이 내리고, 횃불이 켜지며 ‘고취타’가 연주되었다. ‘고취타’는 대취타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짧지만 강렬한 관악기와 타악기가 힘차고 웅장한 연주로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짙은 드라이아이스와 함께 사방지신이 강한 존재감을 뽐내며 객석에서 등장했다. 북 현무, 남 주작, 동 청룡, 서 백호의 모습을 한 사방지신이 창덕궁 인정전 마당에 들어와 나례를 허락하는 춤을 추었는데, 고구려 고분 사신총 벽화에 나온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생동감 있는 의상과 소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위엄있고 한국적인 사방지신의 모습에 관객들은 모두 탄성과 호기심을 금치 못했다. 사방지신이 등장할 때는 관악기의 바람 소리와 아쟁, 그리고 대고와 어가 어우러지며 기묘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신들이 춤을 출 때는 단소 위주의 연주로 문묘제례악이 연상되는 끌어올리는 표현을 활용하여 어딘가 을씨년스러우면서도 동양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집중도를 끌어냈다. 곧이어 역신을 달래는 세역신(設疫神)이 시작되었다. ‘나례’는 궁중 뿐 아닌 민간의 연희패도 어우러져 함께 한 축제다. 길놀이를 시작으로 어릿광대와 풍물패가 궁궐로 들어왔다. 두 명의 어릿광대는 재치 있는 재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유쾌한 무대를 만들어 냈다. 신명 나는 사자춤과 함께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섞인 현시대의 역신을 비판할 땐 관객들 모두 통쾌하게 웃고 즐기며 하나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곧이어 무당이 나와 서도소리 재담인 ‘파경’을 부르고, 관객들과 함께 ‘훠이 훠이 물러가라’는 후렴구를 부르며 본격적인 무대를 열었다. 연희패가 물러나고, 정악단의 ‘해령’이 연주되었다. 어두운 무대 위 편종, 편경 등의 큰 타악기에는 빛이 강하게 쏘여 배경과 대비를 준 고급스러운 느낌의 무대가 만들어졌다. 고상하고 깔끔한 해령 연주와 무대 소품, 조명의 어우러짐은 아름답고 정갈한 이미지를 주었고, 특히 편종, 편경, 방향은 각 두 대씩 편성되어 더욱 깊은 울림과 풍성한 사운드를 선사했다. 곧이어 생명의 탄생과 무병장수를 비는 ‘학연화대무’가 펼쳐졌다. 네 마리의 희고 검은 학의 의상을 입고 나온 무용수들은 양금과 장구, 단소의 세악 편성 반주에 맞추어 우아하고 아름다운 학의 몸짓을 표현하였다. 신비롭고 고상한 학들이 부리로 바닥을 쪼고, 날개를 뒤로 모으는 등의 표현은 실제 학이 눈앞에 있는 듯했고, 단정하고 한국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냈다. 이어 막이 걷히며 등장한 빛나는 연꽃을 학들이 쪼아내자, 그 속에서 두 여자아이가 나와 무용수들과 함께 연화대를 연행하며 멋진 장관을 이루어 냈다. 학들이 연꽃을 깨워 낼 때는 음악이 세악편성에서 관악편성으로 바뀌어 연주되며 자연스럽고 멋스러운 전환을 이루어냈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무용수들의 몸짓에는, 생명의 탄생과 무병장수를 비는 우리 조상들의 바람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다. 그리고 여유롭던 학연화대무과 대비되는 무대 ‘역신무’가 펼쳐졌다. 서민의 삶을 괴롭히는 모든 악의적 존재들을 대표하는 역신들이 붉은 의상과 붉은 지전을 들고나와 강렬하게 춤을 추었다. 무대는 붉게 변했고, 그들은 위협적으로 뭉쳐졌다 흩어지는 동작을 취하며 힘을 과시했다. 이때 타악기의 빠른 리듬 패시지와 더불어 대금과 아쟁의 음산한 사운드가 무대의 양옆을 이동하며 음향적으로 특이한 연출을 선보였다. 4장, 역신을 쫓는 놀이로 구성된 구나희(驅儺戱)가 시작되었다. 전통 나례의 가장 오래된 역할 중 하나인 방상시가 등장했다. 이들은 귀신을 보는 네 개의 눈을 가지고, 창과 방패를 들고 역귀를 몰아내는 신으로, 커다란 탈을 쓰고 나와 낙궁 장단에 맞추어 역신을 몰아내듯 춤추었다. 붉은 조명 아래 민속악적 색채가 물씬 나는 연주와 함께 네 명의 방상시는 힘 있는 춤으로 세상을 위협하는 역신을 강하게 물리쳐 낼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어 ‘처용무’가 추어졌다. 신라시대부터 축역의 일을 대표하여 온 ‘처용’은 신라 처용설화에 기원을 둔 궁중무용으로, 오방색 의상을 입고 처용탈을 쓴 다섯 명의 무용수가 단순하지만 당당하게 역신을 물리치는 장면을 연출해 냈다. 수제천, 염양춘 반주에 맞추어 호탕한 몸짓으로 걸어 나와 사방을 지켜내는 처용무를 보고 있자니, 방상시무와 마찬가지로 역신, 즉 어려움과 고통에 굴하지 않으려는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열두 명의 십이지신 형상을 한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등장할 때부터 굉장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특히 화려하고 견고한 가면과 무기가 흥미로웠는데, 이 소품은 경주 김유신장군묘의 둘레돌에 조각된 십이지신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눈을 뗄 수 없던 현란하고 힘 있는 몸짓은 도드리로 시작하여 점점 빨라지는 장단에 맞추어 역동적인 무대를 펼쳐냈다. 무용수들은 각자 맡은 동물들의 특징을 몸으로 흉내 내거나 각을 맞추어 군무를 추기도 했다. 장단이 점점 빨라져 휘모리장단이 연주되자, 붉은 역신들이 무대로 나와 십이지신과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 타악기의 화려하고 빠른 장단과 함께 서로 얽히고 설키며 푸르고 붉은 역신과 십이지신이 싸우는 모습과 함께, 무대는 절정으로 향해갔다. 십이지신과의 일진일퇴 공방전에도 역신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십이지신이 물러간 후 단정한 흰옷을 입은 열두 명의 어린아이들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들고 들어와 땅따먹기 놀이하듯 진자무를 추어 놀이로 역신들을 쫓아냈다. 이때 춤을 추며 창작동요 ‘훠이 훠이 물렀가라’를 불렀는데, 민속적이고 친근한 느낌의 선율은 앞서 역신들과 십이지신의 숨 막히던 무대의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새로운 희망이 묵은 귀신을 쫓아내다.’라는 주제와 함께,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순간을 몰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무대였다. 태평 신년을 기원하는 기태평(期太平)의 첫 무대는 영상을 통한 불꽃놀이였다. 앞서 등장했던 어릿광대들이 나와 관객들의 무사태평을 비는 축원을 하고, 관객들도 미소 지으며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전통 나례에서도 군기시에서 주관하는 불꽃놀이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그 모습을 영상으로 선보인 이 무대는 화려한 불꽃 영상을 수놓으며 잠잠히 그 벅찬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해 주었다. 불꽃놀이 이후 나례의 끝을 알리는 ‘대취타’의 호탕하고 시원한 연주와, ‘향발무’와 ‘아박무’, ‘무고’ 세 정재를 하나로 엮어 구성한 ‘향아무락’의 밝고 여유로운 춤은 태평 신년을 기원하며 평온하게 마무리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신년공연 ‘나례’의 모든 무대는 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이 함께 어우러져 악가무 일체와 장르의 화합을 이루어 더욱 즐거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선사했다. 이는 국립국악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화합임이 분명했다. 각 악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만들어 낸 연주와 춤은 전통 예술의 다양한 면모를 직관적이고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깔끔하고 소통 지향적인 연출은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감탄을 자아내던 아름다운 조명, 영상 미디어 아트 또한 공연의 수준을 한층 높여주었다. 귀신이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받아 태평한 시간을 맞이하고 싶은 나례처럼, 묵은 액이 아닌 희망찬 신년으로, 우리 모두 더욱 안녕히, 그리고 평온히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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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타고난 안무가 전황의 춤인생과 예술세계국악계로 지평 넓힌 정통파 무용가 이매방(1927-2015.8.7, 국가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27호 승무보유자), 강선영(1925-2016.1.21., 국가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보유자), 김덕명(1924-2015.10.24, 경남무형문화제 제3호 한량무보유자) 전황(1927-2015,5,16,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국립창극단장)등 원로무용가들과 중견무용가 정재만(1948~2014), 임이조(1950~2013), 지희영(1949~2015) 등의 작고는 격동기 근대무용사의 산증인들이자 역사적인 인물들, 과거사를 증언해주고 알려줄 대영박물관과 같은 역사자료가 소실된 것 같은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전황선생님은 80대에도 청년같은 외모와 건강한 모습으로 공연현장에서 유일한 원로관객으로 뵙던 분으로 가장 장수하실 것 같았는데 지난해 갑작스런 비보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간 전황선생님을 뵐 때마다 늘 말쑥한 양복차림, 반듯한 자세로 빼어나게 멋진 노신사의 모습에 부러움과 존경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불가사이한 점도 많은 분이라는 데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80대 고령임에도 청년같이 건강하고 멋지고 미남인 신사로 사셨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둘째, 세계적인 근대무용가 최승희의 정통파 제자이면서 몇 안 되는 남성 한국무용가인데 어찌하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국립창극단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악인들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는가? 타고난 공연예술의 스타집안과 성장배경 전황(全璜, 본명 전두황)은 1927년 3월8일 함경남도 함흥시 남문리에서 전영술과 신명이의 5남3녀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부친 전영술은 함흥시 재판소 앞에서 사법서사를 하며 유복한 가정을 꾸렸다. 부친은 해방 직후에 작고하였고, 모친은 6·25전쟁 직전에 작고하여 어려움도 겪었지만 형제자매들이 대중스타로 우뚝 솟아 있었기에 전황은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맏형 전두옥은 역시 함흥출신 무용가 조택원과 고향친구였고, 영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와 절친으로 영화배우 겸 권투선수였으며, 중국에서 배운 18기 무예를 이 땅에 처음 들여왔고, 승용차를 팔로 끄는 차력도 자랑했다. 누나 전옥(全玉, 배우, 본명 전덕례, 1911~1968)은 ‘눈물의 여왕’으로 무대와 스크린의 톱스타인 그녀를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셋째형 전두철은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사촌형 전운봉은 남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였고 북쪽에서도 인민배우로 대접을 받았다. 누나 전옥과 매형 강홍식(姜弘植, 1902~1971, 이시이 바꾸의 제자, 해방공간 당시 북조선영화촬영소 부소장, ‘봄타령’을 처음 부르고 유성기음반 취입한 가수)의 딸 강효실(姜孝實, 1932~1992)도 다 아는 영화배우이며, 강효실의 아들 최민수도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어 전황의 가계가 한국 근현대공연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황의 딸 전미례는 본래 한국무용을 전공하였지만 아버지처럼 분야를 바꾸어 ‘재즈계 여왕’이라 불리는 재즈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다. 전황의 어린 시절 누나 전옥이 함흥 진사관에 공연하러 고향이 오면 집 앞에는 스타 전옥을 보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때 열서너 살 된 전황은 자랑스런 누나의 연극을 보기위해 친구들과 공짜손님으로 극장을 드나들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황은 1941년 함흥 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함흥상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예인의 삶 속에 젖어들어 갔으며, 맏형 전두옥의 영향을 받아 1946년(19세)까지 권투선수생활을 하면서 강인한 체력과 민첩한 몸동작을 단련하였다. 이러한 가계내력과 성장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 국가적인 스타가 될 만큼 수려한 외모를 선대로부터 물려받았으며, 형제들과 친척들이 예술가들이 많다 보니 전황도 자연스럽게 그런 무용, 국악 등 전통문화를 익힐 수 있는 가정환경이었다. 또 새로운 문물, 스포츠,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문물과 예술에서도 적응력이 강하여 뛰어난 연기력, 체력의 유전적 DNA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황선생님의 인물치레가 범상치 않은 점은 이러한 천부적인 집안내력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유명 연기자들과 예술스타들이 타고난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 후천적인 환경과 노력이 가미될 때만이 보석의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말년까지 정정하고 강건한 자태와 인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맏형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권투선수의 기초훈련에서 익힌 날렵한 잽 동작과 발 스텝과 빠른 호흡과 민첩성 등으로 무용가로서의 유연성과 리듬감, 손놀림과 발놀림 등의 신체적 바탕을 갖추게 된 것임도 알 수 있다. 최승희 제자로의 입문배경과 공연활동 전황의 춤인생은 당시 아시아는 물론 세계무대에도 잘 알려진 무용가 최승희와의 조우에서 비롯하였다. 1947년 3월 최승희가 전황의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마침 남녀무용수 단원을 한명씩 뽑는다는 소식에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응시하였다. 전황은 젊은 혈기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하여 오디션을 받았는데 뜻밖에 최승희의 눈에 들어 많은 젊은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남자로는 유일하게 합격통지를 받고 평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으로 무용경력도 없었던 전황은 1등 합격으로 운명적인 춤인생이 시작되었다. 권투선수로 다져져 손발이 빨랐고 눈썰미가 좋아 최승희의 춤시범을 센스있고 날렵하게 잘 따라 추어 무용수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평양의 최승희무용연구소(1946년 8월 개소) 3기 연구생으로 입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하고많은 거 놔두고, 남자 놈이 춤을 추냐’고 반대했었다. 전황은 집에 있는 공기총과 아코디언을 팔아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로 갈 여비를 만들었다.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받는 국비 400원과 전옥누나에게 받은 용돈 50~100원, 어머니가 보내주는 100원으로 생활비를 삼아 알뜰하게 살면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얼마 되지 않아 30여명의 연구생이 묵는 기숙사생 중에서 최승희의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배우는 수제자로 발탁됐으며 이로 인해 국비를 300원씩 더 받게 되었다. 당시 북측 정부에서 최승희에게 국비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최승희와 안막선생님께 면회를 요청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전하니 국비 중에서 추가로 200원씩 더 지급해 주었다. 이곳에서 전황이 신흥(新興)무용(지금의 현대무용), 조선춤, 남방춤, 러시아춤, 발레 등을 배울 때 바로 위 선배로 김백봉도 있었다. ‘딴 딴 따따딴, 딴 딴 딴딴딴’ 최승희선생이 북을 치면 그대로 발맞춰 따라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배웠다. 반주악사가 없을 땐 리듬감각이 탁월하다며 북과 장구를 치게 했던 것이 국악을 섭렵하는 시초가 되었으며, 이렇게 국악에 눈떠 훗날 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낸 바탕이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그 후 전황은 국비 외에 800원의 월급도 받았는데, 그에겐 금전적인 수입보다 4년 동안 허실없이 배운 최승희 안무법과 음악선택법이 소중할 뿐이었다. 최승희 안무의 ‘초립동’은 안성희에게 배워 1947년(20세)에 추었다. "최승희 선생은 히스테리가 많았어요. 1948년 평양예술극장에서 제가 안성희·김백봉과 3인무 ‘옥중투사’를 추는데, 객석에 앉아 계신 어머님과 사람들이 ‘황아! 황아!’ 부르며 야단이셨죠. 그 소리에 저는 춤순서를 잊어버렸죠. 결국 최선생께 혼나고 긴 손톱으로 꼬집혀 살이 뭉개졌죠.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셨고, 기억력, 창작력,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셨구요” 전황은 1948년 고된 훈련 중에도 단원들 누구보다 동작과 자세, 그리고 순서익히기에서 남다른 끼와 천부적인 표현력을 인정받아 최승희무용단원으로 중국순회공연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중국순회공연을 하던 중 매란방의 〈손오공〉을 보게 되었는데 분장실의 매란방은 남성인데도 춤출 때는 여자같이 곱게 추었다고 하였다. 당시 최승희는 안무작업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는데, 매일 아침마다 두 달 동안 몰래 숨어 ‘노사공’ 안무를 보던 전황이 결국 최승희에 발각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스승은 ‘재주있는 놈’이라며 악사 옆에 앉아서 보라고 승낙하였다. 이렇게 1947년부터 1950년 사이 4년 동안 최승희의 작업, 공연, 생활 등 모든 것을 전황과 김백봉만이 가장 소상히 알고 있는 산증인이 되었다. 1950년 6월 7일에는 100명 규모의 방소예술단원으로 출국하여 9일 걸려 러시아 모스코바에 도착했었다. "하루 종일 달려야 역 하나가 나와요. 치타에 도착하니 거지 떼들이 몰려들어 돈 달라, 빵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우리도 기차 안에서 빵과 과자를 배급받아 먹었을 뿐인데...” 이런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당시 소련) 모스크바 공연 중에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허정숙 단장이 ‘조국전쟁이 일어났다. 남한이 쳐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방소예술단은 정치적 색채를 띤 단체였어요. 러시아 공연도 이미 약속된 공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허정숙은 전쟁 중에도 예술단을 이끌고 공연을 감행하였지요. 러시아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공연장이었어요. 러시아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했는데, 무대에서 탱크가 돌고 10마리의 말이 거니는 규모였습니다.” 그 후로 예술단은 밤마다 이동해 귀국길에 올랐다. 평양으로 돌아온 후에 전황을 비롯하여 최승희무용단원들은 춤연습을 하다가도 폭격이 오면 최승희연구소의 지하실에 피하곤 하였다. 전쟁의 와중에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 구민관에서 ‘해방의 노래’를 공연했다. 어수선하고 자유롭게 나다니지도 못했는데 장추화, 송범 등이 구경을 왔었다. 전황은 군인으로 위장하고 동양극장에 출연하는 전옥의 충정로 집으로 갔는데, 누나는 없고 그 집은 민청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전황은 이산의 고통을 억누르며 ‘초립동’과 ‘목동과 처녀’를 추었다. 춤출 때는 이산의 고통을 잊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평양으로 돌아가 가족과 만날 꿈만 꾸었다. 1950년 8월 예술단은 광주. 목포(여기서 이매방이 안성희와 전황의 춤을 봤다는 생전 증언을 들었다), 군산을 순회공연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인 조치원에서 북한 군표와 남한 돈을 한 뭉치씩 받았다. 전황은 남한 순회공연을 하다 철수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되돌아가던 중 최승희의 딸 안성희 일행과 헤어졌다. 중도에 안성희는 인민군에 붙잡히지만 최승희의 딸이어서 평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가을 전황은 최승희딸 안성희와 헤어져 빨치산 잔류들과 산을 타고 군화 소리 난무하는 평양에 겨우 도착하였다. "최승희 무용연구소로 가니 러시아에서 공연할 때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러나 가족은 없었다. 양복과 구두 등을 챙겨 스승 최승희가 있는 자강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때 전황의 운명은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평안도 석암에서 과일을 사러 가다 예술단 악사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최승희도 여기 있다. 자강도로 가면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누나가 있는 남한으로 가라”하였다. 그때 안성희와 김백봉도 만났다. 그리하여 전황은 석암의 악사네 집 지하에 숨어버렸다. 순수예술가로 살 길은 남한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가는 산길에서 사흘을 굶고 허기져 살길이 막막해 허리띠를 나무에 걸었다. 목을 매 자살하려는 순간에 드라마같은 일이 생겼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연주자 최옥삼(가야금산조 명인, 최승희 반주자)이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며 말렸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 숨어 있다가 숨은 사람들 대표로 전황이 미국 제일기갑사단 대적선전대를 찾아가 "최승희 제자지만 전옥의 동생”이라 하여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1951년 1·4후퇴 때 평양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그때 조카 강효실(당시 20세)은 작가 이서구(백조가극단 작품 집필)가 지프차에 태워 서울로 보냈다. "충정로 누님댁에 가니 누님과 재혼한 매형 최일이 있더군요. 후에 누님댁은 트럭을 빌려 부산으로 피란가고 저는 국민제일 군위병으로 뽑혔으나 늑막염으로 군면제를 받고 뒤늦게 부산으로 갔죠.” 전옥은 백조가극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대스타인 김승호, 허장강, 배삼룡, 고복수, 황금심 등 백조가극단장 전옥의 밥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작고 전에 현재 육군사관학교 뒤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배밭을 소유했는데 남편 최일이 훗날 그 땅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전쟁은 함흥부자인 전황의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고, 북한에 생활기반을 둔 채 남한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힘겨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중부터 안무가로 인정받은 남한생활 1951년 부산피난시절 전황은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개소하여 전옥누님이 단장으로 있는 백조가극단과 무관하게 활동했다. 정인방이 전황을 찾아와 부산극장에서 공연할 무용극 〈처용랑〉의 마귀역할을 이인범(발레)이 사정으로 출연하지 못한다고 대신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대본도 없이 음악을 맡은 나운영의 집에 가 피아노곡을 듣고 안무하여 마귀옷을 입고 현대무용같은 발레를 추었는데, 안무를 잘했다는 평을 받았다. 1953년 박녹주,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임춘앵 등이 주축인 여성국악동호회(여성국극의 효시, 1948년 창단)에서 활동하는 최승희 반주악사였던 박성옥을 따라 동래온천장에서 창극연습에 참가하여 유치진 작 창극〈가야금〉 초연 때 아쟁(박성옥으로부터 이미 배웠음)을 연주하였다. 그때 전황은 박성옥의 연주를 돕다가 한영숙의 춤 〈가야금의 노래〉를 보는데 안무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춤판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햇님창극단장 김주전이 한영숙에게 전황이 최승희 제자니 한번 시켜보라는 귀뜸을 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한영숙이 전황에게 안무해보라고 부탁해 인정받은 것이 오늘날까지 안무가로 자신감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여성군무인 만큼 춤은 추지않고 안무에만 열중하여 여성국악동호회의 후신인 햇님창극단은 잘 나가게 되었고 전황은 안무가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작품 〈햇님달님〉에서 라이벌인 박귀희(햇님)·김소희(달님)가 노래하고 안무는 전황의 몫이었다. 국악을 듣는 귀가 있으니 다른 이가 일주일 걸릴 안무를 하루나 이틀에 완성했다. 동래온천장 공연은 자금이 넉넉해 신선놀음이었지만, 여성국극단이 예닐곱 개씩 생기다보니 서로 제살깎기식 경쟁을 했고 결국 해체를 거듭하다 국립창극단이 태동하게 되었다. 당시 출연료는 명창이 1만원, 악사는 9천원, 안무가는 6천원 정도 받았다. 돈을 벌게 된 23세 전황은 1951년 11월 이조판서를 지낸 집안의 딸 다섯 살 연하의 김봉선과 금정사에서 결혼하였다. 여성국극에 반한 동래여고 출신 김봉선이 햇님창극단 오디션에 뽑혀 무용수로 투입되면서 사귀다가 눈이 맞았었다. 처형이 예기 김강남월로 7세에 레코드를 취입한 천재소녀 명창이었다. 그가 소리한 뒤 순서에는 서로 무대에 나가길 꺼릴 정도였다고 하였다. 당시 누님 전옥은 예술가가 일찍 결혼하면 신세망친다고 반대했었지만 결혼 후에는 처가살이를 했다. 첫아이는 출생 직후 죽었고 5년 후 태어난 전미례(52·서울전미례 재즈무용단대표), 죽은 딸의 이름 ‘미례’를 다시 붙였다. 전황의 2남2녀 중 맏딸 전미례만 춤을 물려받았다. 펄펄 나는 힘과 예술적 열정을 미국 재즈유학에 쏟았고 국내 재즈무용계 무용학 박사 1호를 기록했다. 6·25 전쟁 후 부산에서 북한 출신들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살 때 최승희 제자인 전황은 전옥의 신원보증으로 안무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이인범, 송범은 활동하지 않았고, 김백봉도 북한출신의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조용했었다.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터전이 국극판이었다. 김백봉, 강선영 등도 여성국극단에서 안무했었다. 국극에는 오프닝춤, 상징춤, 경사춤, 피날래춤 등 적어도 너댓 가지 춤이 필요했다. 전황은 국극을 안무하며 창을 계속 들었기에 귀명창이 되었다.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창을 들으며 누구보다 빨리 안무했다. 50여년 이상 국악을 들으며 입으로는 안 되지만 손하고 가슴 속으로는 연주가 가능했다. 〈벌에 쏘인 꽃〉 등 수많은 국극과 창극을 안무했다. 대표작은 첫 작품인 〈가야금〉.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우륵을 따라간 가실왕과 그를 사모한 배꽃아기의 사랑이야기 자체가 건전해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무용작품도 전황류 〈부채춤〉, 〈장구춤〉, 〈소고춤〉, 〈장검무〉, 무용극〈황우와 우미인〉, 〈시집가는 날〉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명창 박귀희와 김소희는 형님아우 하면서 잘 지냈지만 서로 최고이고 싶어 했고, 서로 전황에게 하소연했었다. 박귀희의 명성이 더 앞섰기에 김소희는 늘 불만이었다. "내가 나이도 위고 소리도 잘 하는데 왜 밤낮 박귀희 다음에 김소희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박귀희는 스스로 김소희만큼 소리가 못하다는 걸 깨닫고 가야금병창으로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았고, 김소희는 판소리로 지정받았다. 북한출신이고 최승희의 제자라는 이유로 소외시켰지만 실력으로 춤을 인정 전황은 최승희 선생에게 배운 춤을 바탕으로 창작했으니 내 몸에서는 항시 최선생님의 춤냄새만 난다고 술회하였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자 무용만으론 생활비가 되지 않자 영화사 일도 하고 백조가극단도 봐주고 돈이 되는 일이면 창극단 안무도 하는 등 최승희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춤실력과 안무력을 바탕으로 바쁘게 살았다. 또한 늘 북한콤플렉스가 있었다. 예를 들어 흰 의상과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 빨간색이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보자고 하여 누가 안무했느냐? 왜 빨강색 의상이 가운데로 몰리느냐? 꼬치꼬치 따져 마음대로 창작할 수 없었다. 또 남한 무용가들은 '이북에서 온 주제에 어디를 넘봐' 하는 식으로 질투하기도 했다. 부산피난시절 여성국극단 안무를 할 때 "전황이가 누구냐” 고 하더니 무조건 쇠고랑을 채운 적도 있었다.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간 그에게 "왜 남한으로 넘어왔느냐”면서 간첩취급을 했다. 물론 매번 누나 전옥이 보증을 서서 풀려났지만 그 후로도 국가보안법으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북한출신임을 숨겼지만 전황은 스스로 떳떳하게 밝히곤 하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당시 김백봉과 남편 안제승도 종로경찰서에 불려갔으며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받았다. 올림픽 때 안무를 맡고 싶었는데, '전황이는 이북에서 왔다'며 그를 추천하지 않아 참여를 못한 적도 있었다. 초기의 무용가들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행사안무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얻었다. 문화관광부 등 정부에서는 실력 있다고 알아주었다. 한국민속예술단원 및 안무자로서의 왕성한 해외활동 1958년 국극의 전성기까지 안무가로 활동한 전황은 결혼 후 서울로 이주하여, 1963년 광화문에 신흥무용학원을 내었고, 체계적인 춤교육 덕분에 조교를 두 명이나 두고 지도하였다. 1963년 서울민속무용단 활동과 더불어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등 300명의 단원들은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 해체와 재창단을 거듭하며 예그린도 100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말기 멤버로 동참한 전황은 권려성의 후임으로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 및 안무·연출을 맡았으며, 1964년에는 명동국립극장에서 이틀 동안 제1회 춤 발표회를 가졌다. 이틀 공연은 대박이었다. 흥행사가 붙은 공연은 대전에도 초청됐다. 당시 김백봉은 필동에 연구소를 차렸고, 장추화의 제자 송범은 현대무용을 추었다. 그 후에도 1967년까지 매년 전황 민속무용 발표회를 가졌다. 1967년 정일권 국무총리 때도 계속 민속예술단에서 활동했다. 1968년 한국민속예술단 지도위원 및 출연자로 멕시코 올림픽·일본 공연을 하였다. 송범, 김백봉, 김문숙, 전황 등과 함께 조택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그들은 세계 각국을 순회공연을 하였다. 그 때 전황은 〈부채춤〉 〈농악〉 〈장고춤〉 〈무당춤〉 등 동적인 춤을 안무하고 추었다. 1970년 정부문화사절단 지도위원으로 일본 및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였고, 1971년 정부문화사절단으로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레바논 일본 등 순회공연, 1972년 정부문화사절단 무용총감독으로 유럽·중동·아프리카·동남아 등 24개국 순회공연, 1973년 문공부 파견 일본 신주쿠 고마극장에서 〈춘향전〉 안무와 국립창극단 〈배비장〉 안무를 하였다. 1976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으로 문공부 파견으로 일본 도쿄국제극장 쇼치구가무단의 〈심청전〉을 안무하였다. 1977년 정부문화사절단 유럽 11개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1978년 하와이이민 75주년 기념 한국민속예술단 연출·안무를 맡았으며, 1981년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공연 및 대예술제에 연출·안무로 농악을 올렸다. 이처럼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가적 행사와 해외공연의 안무자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무용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흩어진 〈농악〉을 무대화한 주인공이 바로 전황이다. 한두 시간씩 치는 농악을 15분 정도로 압축해 많은 가락과 춤사위를 정리했다. 김덕수와 최종실 등 사물놀이패가 구성되기 전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의 좋은 점을 뽑아 50~60명이 오르는 무대농악으로 구성했다. 처음 선보인 건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공연에서다. 교방춤과 마당춤을 극장예술로 다듬으면서 극장양식의 변화를 주도했다. 한국국악협회 이사장과 국립창극단 단장을 역임한 전황 최승희 제자로 안무가와 무용가로 활동한 전황이 어찌하여 무용협회 활동을 하지 않고 국악협회로 발을 돌렸을까 의문이 든다. 1964년 한국국악협회 무용분과위원장을 맡고 14년 동안 국악협회 활동을 하다가 1988부터 1991까지 한국국악협회부이사장으로 활동한 배경도 무용계에서는 북한출신이라는 배타성, 남성이 남성춤을 추지 않고 여성춤에만 치중하는 모습, 성정체성의 문제를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이 된 그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하는 대한민국국악제를 협회 주최로 이끌어 오는 등 40여 년 동안 한국국악협회에서 역동적인 남성춤을 안무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타악과 현악과 성악을 터득하여 국악계에서 활동한 것이다.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은 1973년 〈배비장〉 안무를 맡으면서부터였다. 물론 여성국악창극단이 활동한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창극에서의 역할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이어서 1999년 중국 베이징 국극공연 〈황진이〉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그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고법(鼓法) 이수자가 되었다. 고법은 창극단 시절 한일섭과 정철호로부터 조금씩 배워 연주에 참여했던 것을 인정받아 이수증을 받게 된 것이다. 2000년 창작민요극〈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 있었네〉와 창무극〈해상왕 장보고〉를 안무했다.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도 땄다. 일본공연을 자주 가고 일본작품 〈제비〉도 번역할 정도였다. 2002년 문화재청 파견 한·일문화교류의 해 〈천년의 소리〉 일본순회공연 예술총감독도 맡았다. 그리고 2004년 국립창극단 자문위원을 위촉받아 자문하였고,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겸임교수로 10년을 출강하여 마지막까지 춤열정을 후학들에게 쏟았다. 그리고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의 대상으로 춤과 국악 생애를 증언하였다. 다만 장년 이후 춤을 많이 추지 않고 안무를 주로 했기 때문에 제자가 많지만 어려서부터 춤을 배워온 윤성주와 딸 전미례 등이 있고 말년의 제자로는 김지원, 백선희 등이 있을 뿐이다. 전황의 예술세계 전황은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문하에서 사사했고, 1951년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64년 일본 동경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과 안무연출을 맡는 등 정부 문화사절단으로 각국에서 '춘향전', '심청전' 등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한국민속예술단원과 안무자로 유럽 3회, 동남아시아 2회, 미국, 러시아, 중국, 중동, 일본 등 당시엔 한 번 나가기도 힘들다는 외국 공연을 수십 차례 다녔다. 덕분에 국민훈장인 동백장도 받았다. 1988년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거쳐 199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1996~97년 국립중앙극장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무용계뿐만 아니라 국악계에서도 널리 업적을 남겼다. 전황이 남긴 예술혼과 예술철학은 몇 가지 굵직한 교훈과 한국공연예술사에 족적을 남겼다. 첫째, 최승희의 가르침에서 터득한 창작력과 뛰어난 안무력을 바탕으로 민간예술을 민족적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점이다. "저, 최승희 제자예요. 최승희! 최승희 무혼(舞魂)의 흐름이 제 춤에 들어 있다고요. 그 자부심 하나로 이 땅에서 타협하지 않고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살았습니다.”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던 최승희가 전통악기를 개량한 악기반주에 맞춰 민족무용과 국극을 안무하고 창작하던 것을 이어받은 전황은 안무력과 창작력을 발휘하여 ‘마당농악’을 ‘무대농악’, ‘민간춤’을 ‘무대춤’ 등으로 민족무대예술을 발전시켰다. 둘째, 북한출신 콤플렉스를 딛고 일어서 이념갈등 속에서도 남한예술가로 자리매김하며 본인만의 순수공연예술작품을 창작하였다. "북한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저를 보자고 하여 마음대로 창작할 수도 없었죠.” 때로는 쇠고랑도 채웠고,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간첩취급도 당하는 등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많이 받았으며, 북으로 넘어간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편견이 상존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운 고향마저 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을 펼칠 수 있는 남한을 택했고, 굴하지 않은 신념으로 자신만의 예술혼을 살려보고자 각종 공연예술에 전념하였다. 셋째, 여성편향적 경향과 비중에 편향된 사조에 맞서 외롭게 역동적인 남성예술의 복원과 추구에 앞장서 남녀예술의 균형발전과 공존사상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최승희 선생께 남성춤, 여성춤을 확연히 구분해 배웠는데, 왜 남성들이 그리 여성스럽게 추는지‥‥‥‥” 여성춤은 곱고 이쁘지만 남자는 남자다운 춤을 추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살풀이춤, 입춤같은 춤을 춘 적도 없고 장검무, 소고춤, 장고춤, 농악춤 등 남성성이 강한 춤을 추고 가르쳤다. 혼자의 힘으로 대세를 역전시키기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는 남성은 치마(여성)춤만 추지 말고 바지춤을 추어야한다며 남성예술과 여성예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일념으로 살았다. 하지만 전황은 이매방이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했다. 60여년 친구이지만 전황은 남자가 여자처럼 춤추는 게 싫었다. 최승희 문하에서 수년 동안 남성춤과 여성춤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상이 골수에 박힌 그는 춤추는 남성들의 대부분이 여성화된 춤을 추는 게 못마땅했다. 그때부터 그는 무대가 좋지만 무대에 가급적 서지 않았다. 여성적인 춤을 추는 이들과 동일시되는 게 싫었다. 게다가 딸 전미례가 아버지의 성정체성과 취향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해 그때부터는 가끔 서던 무대마저 무대화장을 전혀 하지 않다가 전두환 대통령취임식 때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넷째, 한민족예술의 본질인 가무악(歌舞樂) 일체사상과 악무극(樂舞劇) 합체사상을 표방하고 심어주었다. "국악을 알아야 무용을 창작할 수 있어! 특히 장단의 귀가 뚫려야 산조를 들을 줄 알아야 춤을 만들 수 있지!” 우리 민족은 원래 국악따로 무용따로가 없이 악가무 일체의 예술적 특성을 지닌 민족이다. 전황은 이러한 민족예술과 춤의 본질적 특성을 올곧게 지닌 예술가였다. 서구예술의 전공분화시대에서 소외됨을 무릅쓰고 총체예술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였다. 전황이 한국예술계에 남긴 것 한국 신무용의 핵심이 최승희에서 비롯됐기에 스승 최승희에 대한 기억을 소상히 간직한 전황의 자부심은 귀하고도 올곧았다. 최근까지 남한에 생존해있는 최승희의 대표제자로는 김백봉과 전황뿐이었는데, 유일한 남자제자인 전황선생님의 작고는 신무용시대의 대표적인 적통자이며 전승자의 인맥단절을 의미한다. 그는 평생 최승희의 춤사상을 실천하고 끊임없이 남성춤을 추구해온 근대무용의 산증인이었으며, 무대농악의 창시자이고 국극과 창극에서도 영원한 안무자로 자리매김하여 국악계의 수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등 한국 근대예술사의 한 획을 긋고 떠났다. 끝으로 전황은 예술계의 간디라는 생각이 든다.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 무저항, 평화주의자이였듯이, 전황은 빼어난 외모와 타고난 스타집안의 피를 이어받았고 당시 세계적인 한국무용가 최승희의 남성제자였기에 한국무용계에서 스타반열과 직책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여러 정체성 문제로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도 묵묵히 세태에 복종하지 않았고, 이념전쟁의 희생양이었지만 본인만의 색깔과 예술혼을 불사르며 국가, 사회, 문화계에 무언의 항거를 보여주었다. 국악계로 발을 돌려 커다란 족적을 남기면서 끝까지 무용계를 탓하지 않았다. "전황류 소고춤, 전황류 검무, 전황류 쌍검무, 전황류 농악을 만들었지만 최승희 선생의 혼이 들어가 있다는 거죠. 남자는 남자답게 씩씩하게 ! 그래서 저는 절대로 무대에 오를 때 화장하지 않았습니다. 미례가 나의 성정체성에 의심을 품을 때부터 완전히 화장을 그만두었죠.”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아쉬움도 남는 법이어서 전황선생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 떠오른다. "피리 등 관악기만 못해보고 타악과 현악은 웬만큼 해봤지! 그런데 아쉬움이라면 거문고 산조를 못해본 것이 가장 한이 맺혀! 술대로 현을 드르렁 긁는 소리가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멋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수상〉국무총리표창(68년), 문화공보부장관 표창(69·70·71·72년), 국민훈장 동백장(73년), 문화공보부장관 감사장(81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공로패(82년),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98년), 문화재청 공로 감사장(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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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경산아리랑 가창 경연대회&2023 전국 학생 우리겨레 아리랑 부르기 대회(06/24)전국 초·중·고 학생 대상 <2023 전국 학생 우리겨레 아리랑 부르기 대회> 본 대회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 문화 유산인 ‘아리랑’을 통해 전통문화예술의 가치를 되새겨보고, 미래사회의 주축이 될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 시키기 위해 진행됩니다. <제9회 경산아리랑제>를 맞아 진행되는, "제1회 전국 학생 우리겨레 아리랑 부르기 대회”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 드립니다.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모집 : 공고일 ~ 2023. 6. 12. (월) 18:00까지 ■예선 : 2023. 6.13. (화) 가창 영상 심사(본선 6개팀 선정)※ 결과 공지 : 6.14.(수)네이버 블로그‘경산아리랑제’[blog.naver.com/gs-arirang] 공지 및 개별 문자 안내 (주)국악신문 (www.kukak21.com) 수상소식 ■본 선 : 6.24(토) 15:00 ~ 16:00본선 6개팀 현장 경연심사 ■본선 장소 : 경산시 남매공원 내 경산아리랑제 메인무대(경북 경산시 계양동 466번지) ■주최/주관 :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후 원 : 경상북도교육청,경산교육지원청,경산문화원,(사)아리랑연합회 ■참가자격 및 신청방법 ■참가 자격 : 대한민국 만 18세 이하 초․중․고 재학생 중 3인이상 구성 단체 ■참 가 곡 : 아리랑 중 1곡 선정 가창 (창작 아리랑 가능) ※ 참가자 반주 음원 사용 하여야 하며, 음원을 참가팀에서 준비하여야 합니다. (단, 장단 반주도 가능) ■제출 자료 목록- 지원신청서 1부 - 선정곡 가창 영상※지원신청서 다운로드 : (주)국악신문 경연대회 네이버 블로그‘경산아리랑제’blog.naver.com/gs-arirang ■영상 촬영 및 제출방법 1) 반드시 스마트폰으로 촬영 및 녹화하여 해상도 1920×1080(FHD) .mp4 파일 설정필수 2) 마이크 및 필터 사용 불가 3) 노래 부르기 전 A4 용지에 대회명,녹화일,참가자명을 크게 작성. 3초 정도 촬영할 것 (예시) (대회명) "2023 전국 학생 우리겨레 아리랑 부르기 대회”(녹화일) 2023년 00월 00일 / (참가팀명) 단체명 4) 영상편집 및 사운드 조절 등 수정 불가. 타 대회 제출한 서류도 불가 5) 얼굴 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정면에서 전신 촬영할 것 6) 반주자는 영상 안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것(장구, 소리북 반주 및 반주음원 사용 가능) 7) 인사는 하지 말고 바로 경연 노래를 부를 것 8) 영상의 화질과 음질은 심사가 가능 할 정도의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 촬영할 것. 촬영장소 배경은 심사에 영향을 주지 않음(거울 및 유리 앞 촬영 지양) 9) 공고일로부터 접수기간 내 촬영한 동영상만 인정 ■시상내역 시상 부문 훈 격 시상인원 총액 계 6 상장 및 참여 학생별 소정의 상품 대 상 경상북도 교육감상 1 최우수상 경산교육지원청 교육장상 1 우 수 상 경산문화원장상 2 준우수상 (사)아리랑연합회 이사장상 1 장 려 상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장상 1 ※ 본선 참가팀 참가 지원비 지원 - 대구,경산 지역 20만원 / 기타지역 35만원 (해당 비용은 지도자에게 지급되며, 원천세 차감 후 지급 됩니다.) "제7회 경산아리랑 가창 경연대회” *신청기간: 공고일 ~ 2023. 6. 12.(월) 18:00까지 *경연대회 본선: 2023. 6. 24.(토) 14:00 ~ 15:00 경산아리랑은 창작아리랑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리랑에 포함된 곡입니다. 이러한 경산아리랑의 가치 재조명 및 확산을 통해 경산의 문화와 가치를 높이고자 2017년도 ‘경산아리랑 가창 경연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2023년도 <제9회 경산아리랑제>를 맞아 진행되는 "제7회 경산아리랑 가창 경연대회”에 참여할 개인 및 단체를 모집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모집 : 공고일 ~ 2023. 6. 12. (월) 18:00까지 ■심사일정 - (성인) 명창부 / 일반부 예선 동영상 심사 2023. 6. 13.(화) ※ 결과 공지 : 6.14.(수) 네이버 블로그‘경산아리랑제’[blog.naver.com/gs-arirang]공지 및 개별 문자 안내- (성인) 명창부 / 일반부 본선 무대 경연 2023. 6. 24.(토) 14:00~15:00 ■장 소 : 경산시 남매공원 내 경산아리랑제 메인무대 (경북 경산시 계양동 466번지) ■주최/주관 :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후 원 :경상북도,경산시,경상북도교육청,경산교육지원청,경상북도의회,경산시의회,경산문화원 ■참가자격 및 경연안내 ■참가자격 : - 명창부 : 전국의 남∙녀 성인, 대학생 개인 및 단체에 속한 전문 예술인 (단체 불가, 개인 참여) - 일반부 : 전국의 남∙녀 성인, 대학생 개인 및 단체 (동호희 포함) ■참 가 비 : 없음 ■경연 안내※ 경산아리랑 음원 및 악보 : 네이버 블로그‘경산아리랑제’blog.naver.com/gs-arirang- 경연곡목 : 지정곡 경산아리랑 1절 + 자유곡 (아리랑, 한국민요, 창작민요) 1곡 (3~5분 이내) - 경연시간 : 도합 5분 이내 ■제출 자료 목록 - 참가신청서 1부 ※지원신청서 다운로드 : 네이버 블로그‘경산아리랑제’blog.naver.com/gs-arirang- 본선 자유곡 동영상 파일 (스마트폰 촬영) ■영상 촬영 및 제출방법 1) 반드시 스마트폰으로 촬영 및 녹화하여 해상도 1920×1080(FHD) .mp4 파일 설정필수 2) 마이크 및 필터 사용 불가 3) 노래 부르기 전 A4 용지에 대회명,녹화일,참가자명을 크게 작성. 3초 정도 촬영할 것 (예시) (대회명) "2023 전국 학생 우리겨레 아리랑 부르기 대회”(녹화일) 2023년 00월 00일 / (참가팀명) 단체명 4) 영상편집 및 사운드 조절 등 수정 불가. 타 대회 제출한 서류도 불가 5) 얼굴 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정면에서 전신 촬영할 것 6) 반주자는 영상 안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것(장구, 소리북 반주 및 반주음원 사용 가능) 7) 인사는 하지 말고 바로 경연 노래를 부를 것 8) 영상의 화질과 음질은 심사가 가능 할 정도의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 촬영할 것.촬영장소 배경은 심사에 영향을 주지 않음(거울 및 유리 앞 촬영 지양) 9) 공고일로부터 접수기간 내 촬영한 동영상만 인정 ■시상내역 ■명창부 시상 부문 훈 격 시상인원 시상금 계 4 1,600,000 대 상 경상북도지사상 1 1,000,000 최우수상 경산시장상 1 300,000 우 수 상 경상북도의회의장상 1 200,000 장 려 상 경산문화원장상 1 100,000 ■일반부 시상 부문 훈 격 시상인원 시상금 계 5 800,000 대 상 경산시장상 1 300,000 최우수상 경산시의회의장상 1 200,000 우 수 상 경산문화원장상 2 100,000 장 려 상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장상 1 100,000 ■심사항목 1. 심사위원 구성 : 대외적으로 명성이 높고 덕망이 풍부한 인사 3명으로 구성 2. 음정,장단,가사,태도(자세),복장 등 3. 심사점수는 85~100점이며 3명의 심사위원 점수로 한다 4. 점수는 총점제 방식이며 동점 경우에는 ➀고령자 ➁심사위원장 점수 순으로 결정 ■결과 발표 1. (성인) 명창부 / 일반부 – 예선 결과 발표 2023.6.14.(수) 블로그 공지 및 개별 안내 2. (성인) 명창부 / 일반부 – 본선 결과 발표 2023.6.24.(토) 본 무대 경연 후 현장 발표 및 시상 ■유의사항 - 참가자는 직접 스승이나 8촌이내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는 해당 심사위원의 심사 회피를 신청해야 함 (미신청 시 수상 취소 결정 및 상금,상장 반환) - 단체의 경우 신청명단과 출연자가 다를 경우 수상이 취소 될 수 있음 - 단체의 경우 1개 단체에서 1개 팀만 참가 가능 ■기타사항 - 시상금은 통장 입금 원칙이므로, 시상금 지급을 위한 개인정보이용동의, 신분증 사본, 통장 사본 제출에 협조하여야 함. ■참가신청서 접수 및 문의 ■신청방법 : 메일 접수 / 신청 접수는 마감일 마감시간 내 접수분에 한함. ■접 수 처 : 메일 접수 gs-arirang@naver.com ■문 의 : 053-951-9607(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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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한민국예술축전 성료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예술축전’이 10월 15일 영화 부문 이준철 감독(강원도)의 작품 ‘센서’를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등 총 43팀에 대한 시상을 끝으로 성공적으로 폐막했다.전국 규모의 유일 종합예술 경연대회인 대한민국예술축전은 예술인들의 창작 기반 활성화 및 신규 일자리 창출과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 증진을 목적으로 2018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매년 전국체전이 개최되는 시도에서 병행 개최해 예술과 체육의 융합적 시너지를 확대하고 지역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2022 대한민국예술축전은 올 6월부터 8월까지 광역별로 국악, 사진, 영화 등 세 개 부문에서 총 342팀의 예술가들이 참가해 치열한 지역 예선을 펼쳐 43개팀의 본선 진출팀을 선정했다. 이어 10월 14일 울산광역시 일원에서 열린 본선 경연에서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부문별로 대상, 최우수상, 장려상, 특별상 등으로 나눠 수상자를 결정했다. 2022 대한민국예술축전은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1500만원 △최우수상 1000만원 △우수상 800만원 △장려상 500만원 △특별상(울산시장상, 울산시의장상) △협회 이사장상 등으로 나눠서 시상했고 영예의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국악 부문 - △최우수상: 경상북도(노리광대) △우수상: 제주특별자치도(제주농요보존회) △장려상: 광주광역시(고운매예술단), 울산광역시(울산국악실내악단 소리샘) △울산광역시장상: 대구광역시((사)달성다사농악보존회) △울산광역시의장상: 서울특별시(코스모스) △한국국악협회이사장상: 경기도(전통예술단 호연), 부산광역시(와락심포니), 전라북도(협동조합 아토), 충청남도(굿뜨레전통연희단), 전라남도(예림예술단), 충청북도(창작민요프로젝트 화로), 경상남도(창원국악실내악)사진 부문 - △최우수상: 서울특별시(김용백) △우수상: 충청남도(편선환) △장려상: 울산광역시(강우순), 전라북도(김경남) △울산광역시장상: 경기도(이용철) △울산광역시의장상: 충청북도(이경순) △한국사진작가협회이사장상: 전라남도(김재일), 경상북도(고기태), 제주특별자치도(강병진), 대전광역시(김광철), 대구광역시(정옥순), 경상남도(박은아), 인천광역시(조선일), 광주광역시(임홍택), 강원도(박노철), 부산광역시(신갑섭)영화 부문 - △대상: 강원도(이준철) △우수상: 충청북도(고도은) △장려상: 광주광역시(장광균), 서울특별시(이태리) △울산광역시장상: 인천광역시(김종근) △울산광역시의장상: 대구광역시 (김선빈) △한국영화인총연합회회장상: 제주특별자치도(김혜정), 경상남도(김설국), 울산광역시(홍종오), 전라북도(나아리), 경기도(봉회장), 경상북도(서은빈), 충청남도(정성면,조동관), 대전광역시(윤여봉)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는 예술 문화의 교류 촉진과 예술인 권익 신장을 목적으로 1961년에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건축, 국악, 문인, 연예, 연극, 영화, 음악, 미술, 사진, 무용 10개 회원 협회와 전국 시·도 160개 연합회 및 지회로 구성돼 있다. 대한민국예술인센터를 중심으로 축제·공연·전시 등 다양한 문화 예술 콘텐츠를 확산해 나가고 있으며, 예술가와 향유자 모두 행복한 문화 예술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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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종합 예술대회 ‘2022 대한민국예술축전’ 성료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예술축전’이 10월 15일 영화 부문 이준철 감독(강원도)의 작품 ‘센서’를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등 총 43팀에 대한 시상을 끝으로 성공적으로 폐막했다. 전국 규모의 유일 종합예술 경연대회인 대한민국예술축전은 예술인들의 창작 기반 활성화 및 신규 일자리 창출과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 증진을 목적으로 2018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매년 전국체전이 개최되는 시도에서 병행 개최해 예술과 체육의 융합적 시너지를 확대하고 지역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2 대한민국예술축전은 올 6월부터 8월까지 광역별로 국악, 사진, 영화 등 세 개 부문에서 총 342팀의 예술가들이 참가해 치열한 지역 예선을 펼쳐 43개팀의 본선 진출팀을 선정했다. 이어 10월 14일 울산광역시 일원에서 열린 본선 경연에서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부문별로 대상, 최우수상, 장려상, 특별상 등으로 나눠 수상자를 결정했다. 2022 대한민국예술축전의 공동 주관을 맡은 한국예총 울산광역시연합회 이희석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생태문화도시 울산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전국체전 기간 대한민국예술축전이 개최돼 매우 감사하다. 매년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훌륭한 작품을 출품해주시는 참가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또 "예술축전 개최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큰 지원과 도움을 준 울산광역시에도 매우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김두겸 울산광역시장은 서정욱 행정부시장이 대독한 환영사를 통해 "제103회 전국체육대회와 제4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최 도시인 울산광역시에서 2022 대한민국예술축전을 개최한 것에 대해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치열한 예선을 뚫고 본선에서 감동적 무대를 보여준 전국의 예술가 여러분께도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 모두가 문화예술의 품격과 여유를 누리는 문화도시 조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울산광역시가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장려해 울산에서부터 예술의 꽃이 활짝 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예총 이범헌 회장은 폐회사에서 "해마다 경연 부문과 장르를 넓혀가며 한국예총의 10개 협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예술축전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코로나19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술계를 이끌고 있는 각 지역의 지도자 여러분의 많은 노고에 감사드리며, 내년부터는 시민 개방형 심사와 시상식을 개최하고 대한민국예술축전이 대한민국에 문화예술을 통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22 대한민국예술축전은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1500만원 △최우수상 1000만원 △우수상 800만원 △장려상 500만원 △특별상(울산시장상, 울산시의장상) △협회 이사장상 등으로 나눠서 시상했고 영예의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국악 부문 - △최우수상: 경상북도(노리광대) △우수상: 제주특별자치도(제주농요보존회) △장려상: 광주광역시(고운매예술단), 울산광역시(울산국악실내악단 소리샘) △울산광역시장상: 대구광역시((사)달성다사농악보존회) △울산광역시의장상: 서울특별시(코스모스) △한국국악협회이사장상: 경기도(전통예술단 호연), 부산광역시(와락심포니), 전라북도(협동조합 아토), 충청남도(굿뜨레전통연희단), 전라남도(예림예술단), 충청북도(창작민요프로젝트 화로), 경상남도(창원국악실내악) 사진 부문 - △최우수상: 서울특별시(김용백) △우수상: 충청남도(편선환) △장려상: 울산광역시(강우순), 전라북도(김경남) △울산광역시장상: 경기도(이용철) △울산광역시의장상: 충청북도(이경순) △한국사진작가협회이사장상: 전라남도(김재일), 경상북도(고기태), 제주특별자치도(강병진), 대전광역시(김광철), 대구광역시(정옥순), 경상남도(박은아), 인천광역시(조선일), 광주광역시(임홍택), 강원도(박노철), 부산광역시(신갑섭) 영화 부문 - △대상: 강원도(이준철) △우수상: 충청북도(고도은) △장려상: 광주광역시(장광균), 서울특별시(이태리) △울산광역시장상: 인천광역시(김종근) △울산광역시의장상: 대구광역시 (김선빈) △한국영화인총연합회회장상: 제주특별자치도(김혜정), 경상남도(김설국), 울산광역시(홍종오), 전라북도(나아리), 경기도(봉회장), 경상북도(서은빈), 충청남도(정성면,조동관), 대전광역시(윤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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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33)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시마우타(島唄)는 창작민요이면서 전통성을 담보하는 노래다. 어떻게 이 노래가 지역성과 고향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는지 벤치마킹이 필요해 보인다. 시마우타는 전통적인 우타아소비(歌遊び, 우리의 산다이와 비교 가능)를 통해 보존 전승해왔다. 우타샤(歌者)라고 하는 노래 전문가가 마을, 지역 등에서 독창적인 바이브레이션(시김새에 비유 가능)을 전승해왔다. 우타아소비 뿐만이 아니라 실제는 하찌가쯔오도리(八月踊, 추석의례)를 통해 전승이 확산되어 왔다. 우리의 강강술래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시마우타라는 호명방식은 민요의 하위 범주로 인식되는 장르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섬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노래하는 방식은 매우 즉흥적이다. 즉흥적이어야 진정한 시마우타 가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노래와 마지막 마치는 노래는 고정되어 있다. 매우 조직적인 발전의 경로를 가진다고나 할까. 본래 섬지역의 고립과 고독, 억울함, 슬픔 등을 담아내던 노래의 정서가 현대 일본인들에게도 공유되고 인정된 측면이 있다. 반주악기가 샤미센(三味線)과 치진(북)으로 고정되었다. 이 형태를 정형화한 셈. 마치 우리 판소리와 소리북의 구성에 비유할 수 있다. 전승은 공민관이나 개별적인 시마우타 교실(사설 교습소 등)을 통해서, 특히 거의 모든 공교육기관인 학교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보존 전승이 효율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우리의 경우, 진도지역에서는 1980년대부터 각 학교마다 민요와 민속놀이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마미오시마의 독특한 목청과 음색을 시마우타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제이팝(J-pop)가수라고 할지라도 시마우타 가수라는 호명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바로 이 특성을 살려 노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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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아리랑창작경연대회’&'경산아리랑제' 얼쑤!! 경산아리랑‘경산자인단오제’의 최대 볼거리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았던 ‘경산아리랑제 창작경연대회’가 코로나로 비대면 심사로 진행되다가 올해에는 대면심사로 진행된다. 내달 4일 10시부터 시작된다. 지정곡 경산아리랑과 자유곡 아리랑을 부르면 된다. 명창부, 일반부, 학생부로 신청을 하면 된다. 대상에는 경북도지사 상패와 상금이 수여된다. ‘경산아리랑 창작경연대회’는 전통문화의 창의적 계승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산아리랑’과 ‘아리랑’을 주제로 한 창작작품 경연대회이다. 경산아리랑보존회(회장: 배경숙)가 주최·주관하고 경산시, 경상북도, 경상북도의회, 경산시의회, 경상북도교육청, 경산교육지원청, 경산문화원, 한국예총경상북도연합회, 경산예총, ㈜국악신문, 꿈꾸는씨어터(주)가 후원한다. 내달 4일 오후 7시 제8회 경산아리랑제 특별공연이 전석 초대로 경산 자인 계정숲 단오마당 메인무대에서 개최된다. 올해는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배경숙 회장은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담아 경산아리랑을 경산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노력해왔다. 경상도민의 삶의 애환을 담은 경산아리랑을 편곡하고, 현대화하여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무대화 작업에 힘써왔다. '경산아리랑'을 셔플리듬으로 편곡하여 가장 현대적이며 미래적인 모습으로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어 무한한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하였다. 또한 경상도 지역 민요를 널리 알리기 위해 무대화 하였다. 특히 이번 공연은 시집살이의 절절한 아픔을 담은 '밭매는 소리'를 조선팝으로 편곡하여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하였다. 제1부에서는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가 자랑하는 대표 공연으로 '듣는 민요'에서 '보는 민요'로 민요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하여 민요의 가사에서 등장하는 민요의 배경과 더불어 군무, 연기 등을 가미한 특색있는 공연이 선보인다. 제2부에서는 연희창작집단이 대북의 웅장함과 한국 전통춤이 가미된 창작 퍼포먼스 '락희'가 이루어진다. 제3부에서는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가 오랫동안 준비한 ‘창작민요’ 공연이 이루어진다. 배회장이 민요의 현장에서 채록한 향토민요를 신명나는 창작민요공연으로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고, 관객과 어우러지는 무대이다. 반주팀은 '뮤직텔러 세상타령'밴드가 연주한다. 대금에는 변석준, 해금에는 신혜원, 피리에는 박예지, 가야금에는 홍혜림, 타악에는 박희재, 건반에는 임소영이 연주한다.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배경숙 회장은 "올해는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예로부터 살면서 괴롭고 슬픈 일 있으면 ‘아리랑' 소리 한 가락으로 풀어내였다."며 "즐겁고 흥겨워도 ‘아리랑’으로 흥을 돋우었던 태백산 자락 경상도 사람들의 가슴에 자리했던 수많은 소리는 경상도 부녀자들의 눈물과 한숨, 웃음과 기쁨을 만나게 해줄 소중한 아리랑들이다." 며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제는 아리랑도, 민요도 점차 사라져 아득히 기억 속으로 더듬듯 그 소리 한 자락 헤아리고만 있는 실정이 되었다. 이에 사라지는 민요를 안타까워 레코드와 서적으로 박제하며,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보존하는 것만이 보존책이 아니다. 다시 우리네 삶 곁으로 불러와 생명을 불어 넣어 함께 노래함으로써 숨 쉬게 하여야 한다. 이렇듯 오늘 공연은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숨 쉬게 하려는 8번째 지난한 몸짓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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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경산아리랑전국민요경창대회(6월 4일)■ 대회개요 1) 일시 : ▶모집 - 공고일 ~ 2022.05.25.(수) 18:00 ▶심사일정 -명창부 / 일반부 (성인) 예선심사(동영상 심사) – 2022.05.27.(금) -명창부 /일반부 (성인) 본선심사(무대 경연) - 2022.06.04.(토) 10시~12시 ※성인명창부, 성인일반부 선정권 내 참여 팀(인원) 수 참여 ※학생부 해당사항 없음 -학생부 통합 심사(동영상 심사) - 2022.06.04.(토) 13시~15시 2) 본선 경연 장소 : 경산 자인 계정숲 시중당 특설무대 3) 종목 : 지정곡 경산아리랑 1절 + 자유곡 (아리랑, 한국민요, 창작민요) 1곡(3~5분 이내) 4) 참가자격 : 대한민국 국민(1인 중복참가 불가-단체, 개인 중 선택) 5) 참가비 : 없음 6) 주최, 주관 :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7) 후원 : 경산시 / 경산시의회 / 경상북도교육청 / 경산시교육지원청 / 경산문화원 / 한국 예총경상북도연합회 / 경산예총 ※상기 후원 명단은 일부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 경연부분 1) 명창부 : 전국의 남∙녀 성인, 대학생 개인 및 단체 중 전문 예술인 (단체 불가, 개인 참여) 2) 일반부 : 전국의 남∙녀 성인, 대학생 개인 및 단체 (동호희 포함) 3) 학생부 : 전국 초∙중∙고등학교 재학생 개인 및 단체 ■ 경연방법 (진행 상 변경될 수 있음) 1) 학생부는 비대면 동영상 심사로만 진행됩니다. 일반부, 명창부 는 서면 동영상 심사 이후 본선 참여팀(인) 수는 수상자 인원수와 동일한 팀(인원)수로 선정 됩니다. 2) 경연곡목: 지정곡 경산아리랑 1절 + 자유곡 (아리랑, 한국민요, 창작민요) 1곡(3~5분 이내) 3) 경연시간- 5분 이내 : 지정곡(경산아리랑) +자유곡(아리랑과 한국민요) 4) 지정곡 경산아리랑 1절 ; 경산아리랑보존회 공식블로그, (주)국악신문사 (www.kukak21.com) 에서 다운 받으시기 바랍니다 ※ 경산아리랑 음원 및 악보 : https://blog.naver.com/gs-arirang/222728423568 ■ 제출목록 1) 참가신청서 1부(소정양식)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공식 블로그에서 다운로드 ※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https://blog.naver.com/gs-arirang (주)국악신문사 (www.kukak21.com) 2) 동영상 파일(스마트폰 촬영) 5. 참가신청서 교부 및 접수 1) 교부 및 접수기간: 공고일 ~ 2022.05.25.(수) 18:00 2) 신청방법 - 메일로 접수하며, 신청 접수는 마감일 마감시간 내 도착분에 한함. 3) 신청서 교부 , 문의 접수처 (053) 951-1615 4) 접수처: 이메일 gs-arirang@naver.com ※ 파일명에 경연부분, 이름 기재 (예시) '(경연부분)명창부, 일반부, 학생부 중 선택_(이름) 홍길동) ■ 영상촬영 및 제출방법 1) 반드시 스마트폰으로 촬영 및 녹음하며, 해상도 1920×1080(FHD) mp4파일로 설정함 2) 경연 노래부르기 전 A4용지에 대회명, 녹화일, 참가자명을 크게 작성하여 3초 정도 촬영할 것 (예시) (대회명) 2022년 제6회 경산아리랑제 전국 민요경창대회 / (녹화일) 2022년05월00일 / (참가 자명)홍길동 또는 단체명 3) 영상편집 및 사운드 조절 등 수정 불가하며, 타 대회 제출한 서류도 불가 4) 얼굴 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정면에서 전신 촬영할 것 5) 반주자는 영상 안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것(장구, 소리북 반주 외 사용 불가) 6) 인사는 하지 말고 바로 경연 노래를 부를 것 7) 한복을 입고 촬영할 것(단, 학생부는 예외) 8) 영상의 화질과 음질은 심사가 가능 할 정도의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 촬영할 것. 촬영장소 배 경은 심사에 영향을 주지 않음. (거울 및 유리 앞 촬영 삼가) 9) 본 대회 참가신청서 교부 및 접수기간에 촬영한 동영상만 인정 ■ 심사항목 1) 심사위원 구성:대외적으로 명성이 높고 덕망이 풍부한 인사 3명으로 구성한다. 2) 음정, 장단, 가사, 태도(자세), 복장 등 3) 심사점수는 85~100점이며 3명의 심사위원 점수로 한다. 4) 점수는 총점제 방식이며 동점 경우에는 ①고령자, ②심사위원장 점수 순으로 결정. 학생은 고학년 학생으로 한다. ■ 결과발표 - 명창부 / 일반부(성인) 예선 결고발표 ▶ 2022.05.27.(금) 18:00 블로그 공지 및 개별 안내 - 명창부 / 일반부(성인) 본선 결과발표 ▶ 2022.06.04. (토) 무대경연 후 현장발표/시상 - 학생부 통합심사 결과발표 ▶ 2022.06.04.(토) 18:00 공식블로그 공지 및 개별 안내 ■ 유의사항 - 참가자는 직접 스승이나 8촌이내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는 해당 심사위원의 심사 회피 를 신청해야 함(미신청 시 수상 취소 결정 및 상금,상장 반환) - 단체의 경우 신청명단과 출연자가 50%이상 다를 경우 수상이 취소됨. - 단체의 경우 1개 단체에서 1개 팀만 참가 가능 ■ 기타사항 - 시상금은 통장 입금을 원칙이므로 참가자는 본인 계좌번호 및 인장을 필히 지참할 것 ■ 시상내역 명창부 시상 부문 훈 격 시상인원 시상금 계 4 1,800,000 대 상 경상북도지사상 1 1,000,000 최우수상 경산시장상 1 500,000 우 수 상 경상북도의회의장상 1 200,000 장 려 상 경산문화원장상 1 100,000 일반부 시상 부문 훈 격 시상인원 시상금 계 5 1,000,000 대 상 경산시장상 1 500,000 최우수상 경산시의회의장상 1 200,000 우 수 상 경산문화원장상 1 100,000 한국예총경북연합회장상 1 100,000 장 려 상 경산예총회장상 1 100,000 학생부(초•중•고등부) 시상 부문 훈 격 시상인원 총액 계 10 대 상 경상북도 교육감상 1 상장 및 소정의 상품 최우수상 경산교육지원청교육장상 1 우 수 상 경산문화원장상 2 한국예총경북연합회장상 2 준우수상 경산예총회장상 2 장 려 상 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장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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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33)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시마우타(島唄)는 창작민요이면서 전통성을 담보하는 노래다. 어떻게 이 노래가 지역성과 고향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는지 벤치마킹이 필요해 보인다. 시마우타는 전통적인 우타아소비(歌遊び, 우리의 산다이와 비교 가능)를 통해 보존 전승해왔다. 우타샤(歌者)라고 하는 노래 전문가가 마을, 지역 등에서 독창적인 바이브레이션(시김새에 비유 가능)을 전승해왔다. 우타아소비 뿐만이 아니라 실제는 하찌가쯔오도리(八月踊, 추석의례)를 통해 전승이 확산되어 왔다. 우리의 강강술래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시마우타라는 호명방식은 민요의 하위 범주로 인식되는 장르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섬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노래하는 방식은 매우 즉흥적이다. 즉흥적이어야 진정한 시마우타 가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노래와 마지막 마치는 노래는 고정되어 있다. 매우 조직적인 발전의 경로를 가진다고나 할까. 본래 섬지역의 고립과 고독, 억울함, 슬픔 등을 담아내던 노래의 정서가 현대 일본인들에게도 공유되고 인정된 측면이 있다. 반주악기가 샤미센(三味線)과 치진(북)으로 고정되었다. 이 형태를 정형화한 셈. 마치 우리 판소리와 소리북의 구성에 비유할 수 있다. 전승은 공민관이나 개별적인 시마우타 교실(사설 교습소 등)을 통해서, 특히 거의 모든 공교육기관인 학교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보존 전승이 효율적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우리의 경우, 진도지역에서는 1980년대부터 각 학교마다 민요와 민속놀이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마미오시마의 독특한 목청과 음색을 시마우타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제이팝(J-pop)가수라고 할지라도 시마우타 가수라는 호명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바로 이 특성을 살려 노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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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30)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송가인의 부상으로 트로트가 때 아닌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트로트의 시대가 다시 오기라도 한 것일까. 송가인 열풍에 대해서는 여러 평자들이 논의한 바 있다. 대체로 송가인 신드롬, 송가인 현상, 송가인 증후군 등의 카피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송가인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우선 한 자락 깔고 가겠다. 송가인의 엄마는 왜 무당이 되었나라는 제목으로 본 지면에 소개했던 것도 참고할 만하다.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할 터인데 우선 일본의 시마우타를 거론해둔다. 본지에 민요를 다루면서 짧게 언급했던 적이 있으므로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접 관련이 있다기보다 오래된 일본의 시마우타 현상을 통해 송가인 현상을 이해해보자는 취지다. 시마우타(島唄)라는 호명은 크게는 류큐(琉球)문화권의 민요를 포괄하는 통칭이다. 좁게는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의 민요를 특정하여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창작된 것이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통속민요나 신민요 혹은 창작민요에 해당한다. 시마우타'는 문자로만 보면 '섬(島)노래(唄)'라는 뜻이다. 하지만 '고향민요'라는 뜻이 더 강하다. 두 가지 뜻을 포괄할 뿐 아니라 '노스탤지어(nostalgia)'적 노래라고 나는 해석해왔다. 섬을 소재 삼았지만 고향의 의미로 수용되었고 더 크게는 향수(鄕愁)의 의미로 인식되었다. 지리적으로는 크로시오(黑潮)해류와 한국 서해 혹은 남해와의 관련성을 거론해볼 수 있다. 예컨대 내가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남도가 비교 대상일 수 있다. 아마미오시마의 북쪽 해안이나 도꾸노시마(徳之島)의 북서해안에서는 한국해양쓰레기가 계절마다 수거된다. 물길이 이어져있다는 뜻이다. 관련해서는 졸고, "아마미오시마 섬민요(島唄)와 지역 활성화"(한국민요학'(제34집), 2012)를 참고하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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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콘서트 판] 해주아리랑 -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2020년 1월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협연 -최윤영,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 최윤영 프로필 현 사단법인 경상도민요보존회 대표 현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 대표(부산,청주,서울) 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2호 향두계놀이 이수자 현 서울시중요무형문화재 경제시조 전수자 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현 부산대학교 영재교육원 외래교수 2015 kbs 국악대상 민요상 수상 제5회 한국가요제 대상 수상 제2회 옥천지용창작가요제 대상 수상(날리굿밴드) 개인 음반 1집 "도화 널그리며”발매 개인 음반 2집 "경상도 민요” 발매 개인 음반 3집 "이별.눈물”발매 개인 음반 4집 "경․서도민요”발매 워낭소리 ost 따북네(Original) 참여 국악방송 새음원시리즈 ‘2014 최윤영 토속민요’ 발매 2017 모여라 국악영재들 ‘최우수상(부산) 2017 청소년 프린지 어워드 대상(부산) 2018 모여라 국악영재들 대상(청주), 최우수상(서울) 2018 모여라 국악영재들 대상(청주 유치부)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은 2016년 최윤영 이사장이 이끄는 사단법인 경상도민요보존회의 산하단체로 부산에서 출발한 합창단은 서울, 청주에도 창단을 하여 민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전통민요, 창작민요 등 다양하게 대중과 소통하는 어린이민요합창단입니다. 활동목적: 전국적으로 모든 아이들이 민요를 부르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 아이들로 인해 민요의 보급과 대중화, 교과서에 많은 민요들이 실려 아이들이 민요를 접하고 배울 기회가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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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명창 남은혜 공주 ‘은개골아리랑’ 음반 발표기미양/아리랑학회 이사 공주에 살며, 공주아리랑을 부르며 사는 것을 긍지와 자랑으로 삼는 남은혜 명창이 두 번째 앨범이 탄생했다. 음반 ‘은개골아리랑’이다. ‘은개골’은 사적 제12호 공산성과 충남 기념물 제99호 옥녀봉성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로, 백제역사유적지구 관광의 관문의 골자기 이름이다. 이번 음반 타이틀 ‘은개골아리랑’을 통해 명소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주변의 메세지가 이를 예감하게 해 준다. #"은개골아리랑에는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우리시 도시재생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김정섭 공주시장 축사 중에서) #"인류문화유산 ‘아리랑 신청서 서명 3인’에 선정되어 활동하는 남명창의 은개골아리랑은 또 하나의 공주아리랑으로 널리 불러질 것을 기대한다.”(최창석 공주문화원장 축하 글 중에서) #"공주와 관계 깊은 가사를 가지고 부르는 우리 소리, 즉 창작민요입니다. 이는 남은혜 명창의 또 다른 매력이며 남은혜 명칭만이 하고 있는 의미있는 노력이고 성취입니다.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은개골아리랑! 파이팅입니다.”(시인 나태주 축하의 글 중에서) 남은혜는 음반의 인사말에서 자신있게 말한다.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이유를~ "자랑스런 공주아리랑 전승자로서, 공주아리랑 음반 취입자로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아리랑 등재 신청서 서명자로서, 국가무형문화재 129호아리랑 전승자로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명창의 자부심은 그의 성음만큼 힘차고 단호하다. 이는 이 음반 컨텐츠의 내실이기도 하다. 타이틀곡을 앞세우고 ‘숙세가’, ‘고마의 봄’, ‘정산가’, ‘군밤노래’, ‘치르치크아리랑’이 담겼다. 그리고 장단의 변화(세마치, 동살풀이, 메들리)를 준 은개골아리랑 연주곡을 수록, 총 10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었다. ‘은개골아리랑’은 이병욱 작곡이다. 세마치에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났네/아리랑 쓰리쓰리랑 은개골아리랑’이란 정겨운 후렴으로 시작한다. 사설은 3절로 은개골의 백제 사연, 은개나루의 정한, 누구나의 고향 같은 서정을 그렸다. 1절은 ‘공산성 옥녀봉 바라보면서 버드나무 바람따라 춤을 추는 곳/백제숨결 보듬고 일궈온 마을 이름도 아리랑다운 은개골이라네’라고 하여 신비감을 표현했다. ‘숙세가(宿世歌/백제가요)’는 2000년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 목간(木簡) 시를 번역, 곡을 부여한 작품이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자는 백제인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이다. 조성훈 작사, 오세라 작곡이다. 역사적인 백제가요의 현대화 실증으로 큰 의미가 있다. ‘정산가(定山歌)’, ‘고려사 악지’ 속악 기록을 재현한 작품으로 조훈성 작사, 오세라 작곡이다. 정산은 공주의 한 마을이름으로 느티나무의 풍성함을 들어 인심의 순후함과 군왕의 자애를 표현한 것으로 백제인의 가무전통을 담은 작품이다. 숙세가와 함께 공주의 역사와 정서를 담은 의미있는 작품이다. 이 같은 역사 기록의 현대가요화는 분명한 창조성의 발현이며, 지역 정서의 계속성 작업 성과이다. ‘느티나무 가지를 늘이는 구나/느티나무 복록을 누리는구나’의 여운이 길다. 숙세가와 함께 이 노래는 남은혜의 통성에 힘입어 정가의 맛을 주는 동시에 가객(歌客) 소리라는 풍모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밤 짝에 처녀총각 밤줍기 핑계삼아 밤마실 간다네/ 콩건두러 졌다네 군밤아// 에헤에-군밤아 살 삶은 밤이냐 군밤아’가 흥미와 입맛을 돋운다. 8분의 12박자로 처녀 총각의 핑계를 숨겨주는 맛도 있다. 공주 ‘군밤노래’다. 가사에는 짝밤과 통밤의 모양과 맛을 궁굼하게 하는 대목도 있다. 우리나라 농요를 연구하고 집대성한 이소라 교수의 채보로 알려지게 되었다. 유태환의 편곡으로 현대적인 세련미를 더한 작품이다. 합창곡으로도 적합하다. ‘군밤노래’를 수록한 이 음반은 ‘공주 밤’의 브랜드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창작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은 남은혜의 국외 전승활동 성과를 통해 중앙아시아 동포사회 존재와 위상을 알리는 역사적 의미를 표상화 한 작품이다. 2012년 이후 많은 해외 동포사회 공연에서 ‘아리랑을 통한 디아스포라 정서’를 일반화한 곡이다. ‘남은혜의 아리랑’에서 ‘아리랑의 남은혜’라는 역사적 영예를 선사한 작품이다. 이번 음반은 공주 사랑과 공주 자랑을 표현한 남은혜 명창의 명성과 영예에 값한 기록이며 자랑스런 공주 시민에게 안기는 노래 선물이다. 남은혜(1958년생/사단법인 공주아리랑보존회 회장) *1911년 민요조사자료 ‘공주아리랑’ 수록 자료 발굴 *아리랑 유네스코 등재신청기념 실크로드세계아리랑페스티발(2011년) 참가 *안중근의사추모제(일본 미야기현) 한국 초청명창 참가(아무르아리랑) *제2회사할린아리랑제 아리랑 명창 초청공연 *음반-공주아리랑(2014)/은개골아리랑(2020) 발매 *우금치아리랑(2017년). 금강아리랑(2018년), 공주의병아리랑(2019년) 발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신청서 서명자 * 아리랑상 수상(201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공주아리랑제(매년 3월 1일), 공주아리랑전국경창대회 주관 *백제문화제 초청공연 ‘선상의 아리랑’ 주관 현-충청남도 무형문화재 ‘공주아리랑’ 지정 신청서 제출, 심의 중 공주아리랑보존회 www.arirang1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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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립남사당 단원 모집공고-민요,풍물,태평소안성시립남사당 단원 모집공고-민요,풍물,태평소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신입단원 모집을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안성남사당 http://www.baudeogi.com 1. 모집부문 • 민요(재담) : 경서도 소리 + 재담 • 땅재주(살판) : 살판, 아크로바틱, 전통무예 (풍물 기본) • 벅구(소고) : 채상소고 +12발상모 • 꽹과리 : 웃다리 쇠놀음 • 태평소 : 경제 태평소 2. 응시자격요건 • 대한민국 국적자로써 지방공무원법 제31조의 각호에 규정한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은 자 • 공고일 현재 만20세이상 28세미만의 신체 건강한 자 (단, 남자는 병역을 필하였거나 면제된 자) 3. 전형방법 및 일정 • 일시 : 2006년 12월 21일 (목) 10:00 • 장소 : 안성남사당 전수관 4. 원서교부 및 접수처 • 교부 및 접수기간 : 2006. 12. 1(금) ~ 2006. 12. 12(화) (평일 : 09:00 ~ 17:00) • 원서교부 및 접수처 : 안성시청 문화체육관광과 및 안성시홈페이지 다운 • 접수방법 : 방문접수(근무시간 내) 5. 제출서류 • 응시원서(공고문에 첨부 한 소정의 양식) : 자필로 작성 • 사진 3매 : 전형시 착용복장 전신사진 ( 3×5인치) 1장 최근 6개월이내 촬영한 반명함판 (3.5×4.5cm) 2장 • 응시 수수료 : 10,000원 ( 안성시 수입증지) • 상장 및 지정서 사본 각 1부( 예능대회 수상자인 경우) 6. 전형방법 ⑴ 민요(재담) - 자유곡 : 경서도 소리(창작민요 포함, 5분 내외) - 재담 : 지정 대본 (원서접수 후 E-Mail 개인 전송) - 악기연주 또는 탈춤 중 1종목 선택 : 사물악기 중 선택 (태평소, 선율악기 선택 가능, 3분 내외) 탈춤(한국무용 선택 가능, 3분 내외) - 의상 : 풍물 복색 또는 생활 한복 ⑵ 땅재주 - 살판, 아크로바틱, 전통무예, 마샬아츠 (5분 내외 개인 퍼포먼스) - 재담 : 지정 대본 (원서접수 후 E-Mail 개인 전송) - 의상 : 자유복 * 개인 장기 추가 가능 ⑶ 벅구(소고) - 채상소고 +12발상모 (5분 내외) - 악기연주, 탈춤, 민요 중 1종목 선택 : 사물악기 중 선택 (태평소 선택 가능, 3분 내외) 탈춤 (한국무용 선택 가능, 3분 내외) 민요, 비나리, 고사소리 (3분 내외) - 의상 : 풍물 복색 ⑷ 꽹과리 - 북상, 부들, 웃다리 쇠놀음 (5분 내외) - 민요(비나리, 고사소리, 창작민요 중 선택, 3분 내외) - 재담 : 지정 대본 (원서접수 후 E-Mail 개인 전송) - 의상 : 풍물 복색 ⑸ 태평소 - 지정곡 : 경제 시나위 - 악기연주 또는 탈춤 중 1종목 선택 : 사물악기 중 선택 (채상, 선율악기 선택 가능, 3분 내외) 탈춤 (한국무용 선택 가능, 3분 내외) - 의상 : 풍물 복색 또는 생활 한복 7. 합격자 발표 • 일 시 : 2006.12.26 (화) • 발표 : 안성남사당바우덕이 홈페이지(www.baudeogi.com)및 개별통지 8. 합격자 결정 및 처우 • 등록을 필한 합격자는 소정의 절차를 거쳐 결격사유가 없을 경우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단원으로 위촉하되 3개월 연수기간을둔다. • 신입단원 초임연봉 약 2000만원 9. 기타사항 • 제출된 서류는 일체 반환하지 않으며, 응시원서의 기재사항이나 제출 서류가 허위로 판명될 경우 위촉을 취소 할 수 있습니다. • 응시 서류상의 기재착오 또는 누락이나 연락불능 등으로 인한 불이익은 모두 응시자의 책임으로 합니다 • 1인 응시 또는 전형결과 적격자가 없는 경우는 미 위촉 할 수 있습니다 • 문의 - 응시원서 교부 및 접수 : 안성시청 문화체육관광과 (031-678-2148) - 전형내용 :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031-678-2931) 붙임 응시원서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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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배의 <배뱅이굿과 서도소리> 10.182014 광진 예술인 축제 한마당 중요무형문화재 제 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 예능보유자 김경배의 배뱅이굿과 서도소리 1. 일시 : 2014년 10월 18일(토) 오후 4시 2. 장소 : 광진문화예술회관(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 3. 주최 :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 예능보유자 김경배, 광진예총 4. 주관 : (사)서도소리 배뱅이굿 보존회 서울시지회,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5. 공연소개 오는 18일(토), 광진문화예술회관에서 가 오후4시에 열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 예능보유자 김경배, 광진예총의 주최로 열린 이번공연은 전수자와 여러제자들이 함께하고 태평무,배뱅이굿,판소리 등 다양한 장르로 신명나는 무대가 될 것이다. 6. 공연내용 사회 : 최은서(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 전수자) 1부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20세기 초반 한성준이 창작한 것으로 왕실의 번영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하여 왕비 또는 왕이 직접 춤을 춘다는 내용을 담은 무용이다. … 양진희, 이한월, 김갑녀 배뱅이굿(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최정승의 딸 배뱅이는 상좌중을 사랑하여 연을 못맺고 상사병으로 죽자 배뱅이는 각도 무당등을 불러다 딸의 넋을 달래고자 하나 가짜 무당 건달녀석의 능청스런 박수무당 행세에 속아 넘어가 재산을 털린 이야기다. … 김경배(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 예능보유자), 최은서, 김은희, 이나은, 최혜원, 김시화, 조아름 긴난봉가, 잦은난봉가, 사랑난봉가, 사설난봉가(서도민요) 황해도에는 난봉가라는 민요가있다. 난봉가의 뜻은 사랑의 노래라는 뜻으로 짐작된다. 긴난봉가는 모든 난봉가의 원류가 되는 민요이다. 선율은 수심가 목이지만 좀 더 화창한 느낌을 준다. … 유근수, 홍경희, 박영자, 김금순, 이한월, 전혜경, 김명자, 최영화, 최길자, 배경숙, 백은숙, 정은순, 피미자 아리랑, 풍년가, 경복궁타령(경기민요) … 박옥선, 이이선 장한몽 서도창 발림 엮음식으로 부르는 "장한몽"은 그리 오래된 노래가 아니고, 일본의 "금색야차"(金色夜叉) 를 본떠서 지은 소설을 요약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일제강점기 이수일(李秀一)과 심순애(沈順愛)가 이별하는 대목을 서도창(潟唱)의 발림 엮음식으로 멋스럽게 엮어 부른 이 노래는 일정한 박자가 없는 장단에 맞추어 불린다. 그 가락은 다른 서도소리에 비해 굴곡있게 꾸며졌다. … 강복열(故이은관 선생님제) 2부 한성여중 풍물동아리 덩더쿵(설장고) … 지도교사 최은서 외 20명 판소리 춘향가 중 (갈까부다) … 최길자 한강수타령, 오봉산타령, 오돌또기(경기민요) … 백은숙, 오숙형, 김정연, 노재영 늴리리야, 밀양아리랑, 군밤타령(경기민요) … 배경숙, 함희진, 최치선, 김숙자, 홍성자, 나정희 풍년타령(故이은관 작사, 작곡) … 오경란, 김설아 연평도사공(故이은관 작사, 작곡) 故이은관 선생님께서 작사, 작곡 하신 창작민요로 연평도바다로 고기잡이 떠나는 뱃사공의 애환을 표현한 곡이다. … 김경배, 최길자 노랫가락. 창부타령(경기민요) … 홍경희, 백은숙, 배경숙, 정은순 청춘가, 태평가(경기민요) … 오경란, 김설아 서도 배치기 전라북도 위도에서 경기도 연평에 이르는 서해안 일대 어부들이 즐기던 춤과 노래. … 김종태, 최은서, 강복열, 박현수 외 출연자 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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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놀이마당 두 번째 상설공연 4. 25● 일 시 : 4월 25일 토요일. 오후 5시 - 6시 ● 장 소 : 낙성대공원 전통혼례식장 ● 공연내용 : 양산사찰학춤, 문둥북춤, 창작민요판 부부이야기, 앉은반 삼도사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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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립국악단 제 75회 정기연주회 4 월 30 일일 시 : 2008 년 4 월 30 일 (수) 19 시 30 분 장 소 : 경기도국악당 대공연장 문 의 : 031-289-6400 프로그램 1 경기민요 금강산 타령 (출연/ 경기도립국악단 민요팀, 한얼예술진흥회, 경기도국악당 문화교실 민요중급반) 2 경기민요 긴아리랑, 이별가 (출연/ 이춘희, 최근순) 강원도민요 정선아리랑,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 3 함경도민요 신고산타령, 궁초댕기 (출연/ 한얼 예술진흥회) 4 제주민요 서우제소리 (출연/ 박진하, 조미정, 함영선, 이나현, 하지아) 5 경기잡가 장기타령 (출연/ 이윤경, 경기도국악당 문화교실 중급민요반) 6 경기민요 노랫가락, 청춘가, 태평가, 창부타령, 양산도 (출연/ 최근순, 최은호, 이선영, 김점순) 7 팔도민요 (출연/ 박진하, 이윤경, 조미정, 함영선, 이나현, 하지아) 8 창작민요 나의 강산이여 위촉초연 (작시/ 심훈, 작곡/ 이준호, 출연/ 경기도립국악단 민요팀) 9 창작민요 대수풀노래 (작시/ 김소월, 작곡/ 이준호, 출연/ 경기도립국악단 민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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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정기공연 [시조창무극] "정가(正歌)의 진수(眞髓)와 한국인의 멋" <12월 2일>제11회 정기공연 [시조창무극] 우리얼 우리가락을 찾아서... "정가(正歌)의 진수(眞髓)와 한국인의 멋" ● 일시 : 2006년 12월 2일(토) 늦은 7시 ● 장소 : 부산문화회관 중강당 ● 주최 : 한얼정악연구소, 송이한복연구원 ● 주관 : 교사시조연구회, 김정원의 춤소리 예술단, 정다회 ● 후원 : 부산 MBC, 부산일보 ● 프로그램 [1부] 정가감상 ㅁ 가곡(歌曲) - 해설 : 박명화(부산대신중학교 교사) - 반주 : 채수만 외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 춤 : 김정원(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 국회의장상 수상자) 1. 우락(바람음) - 창 : 정인경(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이수자 /전국 정가경창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2. 언락(벽사창이) - 창 : 예찬건(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자 / 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정가부분 대상수상) ㅁ 가사(歌詞) - 춤 : 춤소리예술단 1. 매화가 - 창 : 김가인(상당초등학교) - 한얼정악창무극단 2. 죽지사 - 창 : 정인경(중요무형문화재 제41회 가사이수자 / 전국 정가경창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ㅁ 시조(時調 : 풍류) - 창 : 이희재(부산대 국악과 / 전국정가경창대회 일반부 가곡, 가사부문 금상수상) - 창 : 조수연(부산대 국악과 / 전국정가경창대회 가곡부 최우수상[문화재청장상]) - 가야금 : 강현정 / 대금 : 채수만 / 춤 : 장 미 / 선비 : 김형철 / 하인 : 박순이 1. 평시조 2. 우시조 [2부] 한국인의 멋 ㅁ 돌맞이 다례 이 무대에서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첫돌을 맞는 날, 이웃집 친지들을 초청해 아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덕담을 나누며 차를 마시던 선조들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 - 창 : 여창지름시조(부산교사시조연구회) ㅁ 한복쇼 중허리시조 - 창 : 이영숙(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전수자 / 신라문화재 전국 시조경창대회 명인부 장원) ㅁ 특별출연(가야금병창) 창작민요 - 출연 : 예림국악예술원생(지도 : 김현주[국악협회지부장]) ㅁ 우리춤 1. 시조창과 학춤의 만남 - 창 : 박수진, 정유정 2. 긱 시조 - 주인 : 김말자 - 헌다인 : 노명자, 김화숙, 강옥희, 정선화 - 학 춤 : 김화숙, 이금숙, 전애경, 김혜영, 주미영, 서정향 3. 소고춤 - 김정원(춤소리 예술단 대표 외 문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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